오랜만에 잡담으로 돌아왔다. 써보고자 하는 주제가 좀 미묘한데 이걸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그냥 새 카테고리를 만들지 고민하다 잡담으로 와버렸다. 그래서 입구에다 개발자 출입 금지 구역이라고 거창하게 적어놓은 주제에 좀 개발자다운 이야기로 시작해야겠군.

디지털 단종斷種

styledcomponent

2025년 5월 기준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때, Recoil도 갔고(2025년 1월 1일 코드 저장소가 Archived) Styled-components도 갔다(2025년 3월 18일 "maintenance mode"로 변경된다고 공지). 한 땐 프론트엔드 커뮤니티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각자의 영역에서 기본 선택지 중 하나로 꾸준히 추천되어 온 두 라이브러리였으나 이젠 역사 속으로 밀려나 버렸다. 하지만 이 라이브러리들이 지원 종료되었단 사실 자체보다 내가 더 놀랐던 부분은, 이 소식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조용하냐면 지금 당장 구글로 가서 Styled-components를 최근 1달 기준으로 검색해도 아직 "지원 종료"라는 키워드 없이 라이브러리 사용을 위한 환경 설정법을 알려주는 최신 글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라이브러리라는 개념에 있어 지원 종료가 그 라이브러리의 즉시 사용 불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커뮤니티의 그런 무관심의 모습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은 프론트엔드라는 분야의 성숙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근데 여기 카테고리 자체가 좀 감상적인 공간이거든, 그저 맘속에서 뭔가 모를 덧없음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hits-placeholder

코드 저장소가 Archived 상태로 전환된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다. 앞서 지원 종료가 라이브러리의 즉시 사용 불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번엔 완전히 서비스 자체가 셧다운된 경우다. 별다른 서버 구축 없이 웹 사이트의 하루 접속 수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 HITS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여러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위 이미지와 같은 형태의 버튼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이 버튼들이 자취를 감췄고, 2025년 5월 기준 HITS의 사이트에 접속하면 Page not found만이 반겨줄 뿐이다.

서버 만들기 귀찮았던 내 블로그에도 역시 HITS 버튼이 달려있었다. 사실 블로그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들어놓은 웹 페이지 대부분에 HITS를 달아놨었지. 갑자기 그 버튼들이 모두 엑박이 떠버리니 당황스러워서 자료를 찾아봤으나 이 경우도 역시 정말 조용했다. 사실 그리 깊은 검색을 했다고는 못하겠지만, 당장 수면 위로 드러나는 HITS의 상태에 대한 최신 글이 없다 보니 당최 이게 내 네트워크 문제인지 서버 오류인 건지... 아무튼 흥망성쇠란 이런 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면서 명을 다하는 것은 아니더라고.

hits-counter
https://hitscounter.dev/

물론 정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상황을 처음 겪었을 땐 정말 아무런 글도 찾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다시 검색해 보면 몇 명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HITS 제작자의 노고를 샤라웃하면서 아예 새 서비스를 만든 사람도 등장했다. 당연히 내 블로그의 카운터도 이걸로 바꿨다. 이전까지 쌓여있던 접속 수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런 게 오픈소스의 놀라운 회복력 아닐까.

사라져가는 웹

지디

뉴스레터였나 트위터였나, 어디선가 읽었던 인상 깊은 말이 있다. 디지털은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가는 매체가 아니다. 디지털 암흑기라는 표현이 있다. 이게 그냥 인터넷 커뮤니티의 익명 사용자가 한 말이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가 주장하기도 한 내용이다. 최근 겪은 일련의 상황들은 이 표현을 떠올리게 했다. 요점은, 지금 바로 앞 문장에 링크를 걸어 놓은 조선일보 기사도 수많은 가능성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죽은 링크가 생김으로써 지금 쓰고 있는 내 글 또한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존주의
생존주의

몇 달 전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션이 갑자기 망해버리면 어쩌지?". 이때 떠올렸던 노션 템플릿이 생각보다 훨씬 유용했던 덕분에 벌써 4년째 꾸준히 사용 중인데, 정말 만에 하나 갑자기 노션이라는 회사에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생겨서 내가 지난 4년간 기록해 온 모든 정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겁이 나더라. 그래서 로컬 저장 방식이라는 옵시디언으로 바꿔야 하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도 해봤으나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재난 상황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고. 하지만 분명 어딘가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그걸 실제로 실행에 옮긴 디지털 생존주의자들이 있을 것이다.

차라리 요즘엔 디지털 세상에 너무 정을 주면 안 되겠단 생각을 하기도 한다.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인터넷 글이 어느 날 사라져 찾을 수 없게 된다거나, 인터넷 어느 구석 작은 게시판에 한 아마추어 작가가 그려 올린 취향 저격 만화를 도저히 다시 찾을 수 없다던가, 지난 10여 년간 해온 게임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가 이 게임의 신작이 나옴과 함께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결국 자신이 할 것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것밖에 없더라. 특히 마지막 사례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저장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잖아.

/now

now

작년 블로그를 재개발하는 와중 흥미로운 아이디어 하나를 발견했었다. 자신의 웹사이트에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려주는 /now 페이지를 만들어보자는 것. 그 누구도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이 블로그에도 /now 페이지가 있다. 아무래도 나는 개발자가 되기엔 지나치게 감상적인 편이기에 "누군가의 요청에 대해 no하는 용도로" 쓰진 못하겠고, 그날 기분을 적어놓는 용도로 쓰고 있다. 공개된 일기장이란 말이지.

래퍼 최엘비가 <독립음악>에서 이야기한 주제가 있다. 내일 당장 본인이 죽어도 자기 음악은 유언처럼 남아있을 거라고. 디지털 세상이 영원하게 유지되길 원하는 내 집착의 근간이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기록을 비롯한 창작이란 순간의 생각을 포착해 종이 따위에 새겨놓는 행위거든. 그런데 종이는 불에 너무 잘 탄다. 필름은 심지어 불에 더 잘 탄다. 그래서 디지털이 보여주는 강인함에 더 매료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해온 것처럼 영원히 버텨줄 줄 알았던 이 전기/전자적 저장 매체 또한 충분히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결국 누구 말마따나 영원한 건 절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만은 영원하길 바라는 게 창작자의 마음일 뿐. 그리고 영원에 가까이 오랫동안 살 수 있는 게 오직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그 "생각" 그 자체겠지.

이런 깊은 생각을 갖고 만든 /now 페이지는 아니다. 그냥 솔깃하고 뭔가 있어 보이니까 하나 만들어둔 거지. 그리고 생각보다 쓰는 게 재밌어. 솔직히 최근엔 블로그 게시글 쓰는 것보다 /now에 일기 쓸 때 속도가 더 빠르더라고. 다만 요즘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이 페이지의 가치에 대해 생각이 더 붙고 있다. 누군가가 겪은 순간을 포착해 그 기록을 공개해 놓는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그리고 정말 내게 이것만은 영원하길 바라는 생각이 있다면, 결국 그걸 어디에 새겨둘 것인가 보다 그 생각을 얼마나 잘 드러낼 것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