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반성의 시간
미안합니다. 저는 지난 반 년 동안 블로그에 소홀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글을 써 본다. 그렇다고 블로그를 방 한 구석에 던져놓은 것 처럼 산 건 아니었다. 가끔씩 구글 서치 콘솔 들어가서 클릭 수 좀 올랐나 눈팅도 했고, 여기저기 꾸며도 보고, 글 주제도 잔뜩 정해놓고 초안도 두 개 정도 써놨다. 가끔씩 들어와서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 보면서 약간씩 수정하기도 했다. 역시 이 블로그에서 노리는 최우선 고객이 나 자신인 덕에 글이 재밌긴 하더라. 하지만 구슬이 서 말 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탈고를 안했는데, 포스팅을 안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니. 짧게 변명하고 끝내자면, 돈 버느라 좀 바빴다.
아무튼 블로그에게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했지만, 블로그가 그립기도 했다. 투 머치 토커이자 극도의 내향 인간인 나는 몰려드는 생각, 특히 나에 대한 생각을 배출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일도 당분간 없고, 시간은 적당히 남았고, 초안을 적어 놓은 글들을 마무리 하기 전에 가벼운 주제로 한 해를 시작해보려 한다. 최근엔 마중물이란 단어를 자주 쓰는데, 2023년 블로그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긴 어디인가
내용과는 관련 없습니다.
작년 하반기엔 일을 좀 했었다. 정식으로 면접을 보고 입사해 정직원으로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계약 기간을 두고 진행한 일이었다. 사무실도 있었지만 연말 부터는 경부선을 자주 타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은근 방랑벽이 있는 편이라 생각보다 재밌긴 했다. 돈도 벌고 경험도 쌓고, 어느덧 일은 마무리 되었고 시간은 2023년 1월.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취업 전선. 조금 지친 상태지만 번아웃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어 보인다.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CS 지식을 다시 돌아봐야 되고, 코딩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뇌를 만들어야 한다.
뭐.. 그냥 하면 되겠지. 어느 정도는 길이 있는 것 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정해진 길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문제도 있다. 나는 왜 취직을 하려고 하는걸까. 그것도 개발자로. 물론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논리가 가장 먼저 튀어나올 것이다. 배운게 이건데. 돈 벌어야지. 살아가야지. 그리고 그 논리가 나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래서 여긴 어디인가. 나를 돌아볼 수 밖에 없는 곳에 나는 있다.
나를 돌아봐
애석하게도 나는 설정오류를 엄격하게 따지는 편은 아니었다.
프로그래머란 직업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한 초등학교 5~6학년 쯤, 어릴 때 부터 컴퓨터를 잘 다뤘다는 이유로 (사실 그래봤자 또래에 비해 한글이나 파워포인트 같은 툴을 잘 다뤘던 것에 불과했는데) 덜컥 이 길을 정해버렸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엔 두꺼운 C언어 책을 사서 들고 다닌다던가. #include
같은 코드를 어디다가 적어 놓는다던가. 카톡이 조금만 더 일찍 나왔으면 상태 메세지에 "Hello World"
라고 적어놨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너희랑 달라" 라는 마인드만 아주 강했다. 어렸지... 결정은 너무 성급했고, 그렇다고 허세 이상의 노력을 하진 않았다. 깊은 고민으로 시작하지 않았던 이 길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건 아닐까.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발목 정도는 이미 담군 것 같은데.
몇 년 전 군대 문제로 대학교를 휴학 했을 땐 진지하게 개발자가 아니라 학교 선생님 같은 직업이 나한테 더 어울리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어디서 주워들은건 많아서 주변에 이것저것 알려주는 걸 재밌어 하기도 했고, 한창 코딩 의무교육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던 시기라. 하지만 여기에도 확신은 없었다. 다른 길을 물색하는 시도였다기 보단 마음이 꺾여버렸던 시기에 가까웠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도 역시 내용과는 관련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여기 남아가지고 코드를 짜고 있다. 심지어 주변에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돈 안받고 개발하는게 꿈이라고.(충격) 어쩌다 이 아이는 타락하게 되었는가.
이하 장문주의
나는 지금까지 여러 취미에 관심을 가졌다가 잊어버리길 반복하며 자라왔다. 나이가 한 자릿수였을 땐 레고를 가지고 놀기 좋아했다. 정돈 안된 레고 무더기가 담긴 상자를 뒤져가며 무슨 전함 같은걸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자라서 노래 듣는 게 너무 좋았을 땐 무작정 가사를 공책에 따라 적어보곤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내 노래를 상상하며 내 가사를 적고 있더라. 친구에게 기타 코드 잡는 법을 배워 기타가 재밌어졌을 땐, 유명한 노래들을 따라 치기보단 앞서 적어 보았다던 가사에 멜로디를 입히는 걸 좋아했다. 판타지 소설이 재밌었을 때는 세계관을 구상해 당시 쓰던 일기장에 적어본 적도 있다. 지금은 버렸던가 그 공책.
스타크래프트가 아직까진 국민 게임이었을 시절에 나는 유즈맵을 즐겨 하는 편이었고, 직접 유즈맵을 만들어 인터넷 카페에 올려보기도 했다. 다운로드 수는 거의 없었지만. 그 후에도 재미있는 게임이 있으면 나라면 이 게임에 어떤 캐릭터를 만들까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디즈니 얼음왕국 같은 3D 애니메이션이 멋져 보였을 땐 무작정 애니메이션 툴을 다운받아 튜토리얼을 따라 해 본 적도 있다. 지금은 싹 다 날렸지만. 그래도 덕분에 IK/FK Rig이 뭔지 구분 정도는 할 줄 안다. 그 즈음에 DAW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노래를 만들겠다고 설치고 다니기도 했다. 아두이노 미니를 사서 집에서 혼자 납땜해 본 적도 있다. 작년만 해도 상반기를 온전히 내가 만들어 보고 싶은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했다. 아직도 나는 아이디어를 생각나는 대로 노션에다가 던져놓는 삶을 살고 있다.
정신없이 늘어놓은 취미들이 한 가지 지점으로 수렴한 듯한 기분을 받고 있다. 나는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이 재밌어서 코딩을 한다고 한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들 혹은 컴퓨터 그 자체가 좋아서 코드를 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도 코드를 작성하고 있는, 코드를 작성하는 직업을 가지려는 가장 큰 이유는, 뭐가 됐던 만드는게 재밌었기 때문이다.
전직
판타지란 현실의 데포르메 아닐까.
어느 분야를 가던 그 사람의 경험은 축적되어 호칭에 남게 된다. 컴퓨터를 가지고 놀며 자라온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단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을 것이다. 가장 흔하면서 마음이 덜 무거워질 만한 선택은 코더, 프로그래머, 개발자 정도가 있다.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장착한 이들은 조금 다른 단어들을 선택하기도 한다. 엔지니어, 해커, 긱, 구루, 아키텍트, 전문가 같은 단어들 말이다.
이런 호칭들은 저마다 다른 뉘앙스를 준다. 그리고 이 미묘한 뉘앙스가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다시 구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러 유명 저서의 저자 로버트 C. 마틴은 자신을 Software Craftsman(장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꾸준히 Craftsmanship(장인정신)을 강조해왔으며, 에자일 선언문을 확장한 소프트웨어 장인정신 선언문에 참여하였고, 관련 내용들을 블로그 포스팅과 서적으로 전수하고 있다. 그 유명한 클린 코드의 부제도 《A Handbook of Agile Software Craftsmanship》이고 클린 아키텍처의 부제도 《A Craftsman's Guide to Software Structure and Design》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정체성은 엉클 밥과 비슷하다. 내가 가진 셀 수 없는 다각형의 꼭짓점들 중 나는 "만듦"에 좀 더 무게를 주고 싶다.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 자부심이 나를 다시 장인으로서 발전시키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한다.
예를 이렇게 들면서 장인 이야기를 하니까 뭔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자, 코드 ... 이런 쪽으로 무게가 기우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여기는 Not 4 Developers, 진지한 기술 블로그의 도피처.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작품을 잡아 먹을 듯 노려보며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모난 곳을 깎아내고 있는 장인의 모습도 좋지만 조금은 가벼운 자세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장르 불문, 언젠간 꼭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
다시 말해서, 버킷 리스트
글, 그림, 음악, 공학, 예술, 기타 등등 장르 불문 언젠간 꼭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 위에서 취미 이야기를 할 때도 느꼈지만, 나는 흥미를 얕고 넓게 가지는 스타일이다. 한 가지만 하기엔 삶이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드나 보다. 그 얕고 넓은 흥미 덕에 내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 목록은 내가봐도 꽤 터무니없어 보인다. 가끔씩은 철없어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 갑자기 스치는 망상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바로 매력이지. 지금까지 서론이 길었다. 사실 나는 이 버킷 리스트를 나열해보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다. 번호를 붙이긴 할건데, 순서에 큰 의미는 없다.
1. 블로그
당신이 보고 있는 바로 여기
현재 진행 중이지만 동시에 만들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블로그를 하고 싶단 마음을 먹은 기간이 길었던 것 치곤 그리 깊은 준비와 고민 후에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만들고 관리하다 보니 이게 재밌단걸 깨달았다. 블로그에 올라가는 포스팅 하나 하나가 글쓰기로써, 만들기로써 재미를 준다. 블로그를 여기저기 꾸미고 기능을 하나씩 추가하는 것 또한 재미를 준다. 생각해보니 블로그 소개글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이 메타버스 시대의 싸이버 스-페이쓰에 내 집 마련한 기분". 내 집을 꾸미는 듯한 기분이 주는 고양감이 있다. 여러 일기장을 써 왔지만 역시 돌고돌아 순정이라고, 블로그가 최고구나.
최근엔 Inpa 라는 분의 블로그를 보고 자극을 더 받고 있다. 클릭 할 때 마다 꽃가루가 막 터지고... 저런 느낌을 원하는 것 까진 아니지만, 방향성과는 별개로 정성이 느껴진다. 솔직히 지금 내 블로그는 너무 칙칙하고 심심하긴 해. 아니면 깔끔한 느낌을 원한다면 hELLO.(정상우)님의 블로그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애초에 Inpa님 블로그가 이 블로그 주인장이 만드신 템플릿을 썼구나. 아무튼 이 블로그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싶다. 조만간 시작할 땐 하지 않았던 깊은 준비를 해서 블로그를 리빌딩 해보려고 한다.
2. 인테리어
방꾸(방 꾸미기란 뜻). 내 마음은 항상 위 짤방과 같다. 그런데 사이버 스페이스는 마련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 내 집은 아직 없다. 20살이 될 때 까지 집에 내 방도 없었고. 대학교 생활은 기숙사 2인실. 자취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애매한 기간동안 본가/자취방을 띄엄띄엄 살아버려서 공간을 마음먹고 꾸며보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일단 본가에서 내 방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게 또 올해 목표대로 상반기 취직을 하면 떠나버릴 계획이라 또 애매하다. 물론 인생이란게 항상 계획대로 되지는 않지만, 아무튼 최대한 빨리 내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
인테리어도 만드는거라고 봐야하나 싶긴 하지만, 그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실용적인 측면도 미학적인 부분도 온전히 나에게 맞춰서. 원룸에 살더라도 공간을 잘 나눠서 작업용 공간을 마련해두고 싶고, 방 한 쪽 책장엔 좋아하는 만화책 전권을 사서 보관해두고 싶다. 디퓨저나 조명, 취향에 맞는 소품들도 배치하고 싶다. 얼머나 이쁠지는 자신 없지만, 계속 노려보다 보면 괜찮은 구도가 나오겠지.
3. 개인 서버
그리고 그 방 한구석에는 24/7 돌아가는 소형 컴퓨터가 존재할 것이다. 홈 서버도 개발자의 로망 중 하나일 터. 라즈베리 파이나 라떼판다 같이 뛰어난 개발 보드가 있어서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여기에 필요한 부품들을 장착시켜 NAS도 구성하고, 원격으로 게임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원격으로 LED도 반짝거려 보고... 생각보다 할 거 없는데?
사실 홈 서버는 구체적으로 뭘 하고싶단 생각보단 로망 때문에 리스트에 넣어두긴 했다. 어떤 서버용 PC를 살 지 고민하고, 도메인 비용을 알아보고, HTTPS 인증서를 발급받고, 포트마다 원하는 서비스들을 구현/등록 하고, 서버를 구축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전부 성취감 덩어리로 보인다.
할 일(To Do)과 살 것(To Buy)을 합쳐 두바이(Dobuy)
최근엔 GraphQL 배워 보겠다고 이렇게 개인용 Todo list도 만들었었는데, 1회성 공부용으로 남겨두는게 아니라 개인 서버에 올려서 계속 써먹으면 더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4. 웹 서비스
아니면 홈 서버에 좀 더 강력한 서비스들을 넣는 것은 어떨까. 혹은 서비스 개발용 서버 정도라도. 이번 주제는 내 자격지심도 조금 반영된다. 어디 가서 내세울 만한 서비스 하나 완성해서 고객을 모아 봤다거나, 공모전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본 적이 없다는것. 나만 쓰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 번 수줍게 내밀어볼 만한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다.
하나하나 다 설명하긴 구차해
그런 마음으로 몇 가지 서비스를 시도했고, 시도하고 있고, 시도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진 영... 그래도 이 리스트에서 가장 활발하게 도전하고 있는 항목이다. 가장 전공에 맞닿아 있어 당장 취직에 도움되기도 할테고. 이게 일석이조지. 하나씩 만들어질 때 마다 이 블로그에 그걸 소개하는 글을 또 따로 적어보고 싶기도 하다.
5. 회화와 조소
참고로 나는 고야가 그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좋아한다.
일단, 나는 그림을 엄청나게 못 그린다. 글씨도 심각한 악필이다. 선 자체를 잘 못 긋는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을 실재화하는 것, 그 형태를 구성하기 위해 미적 감각은 필수다. 근데 내가 그게 없어...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단 욕구는 꽤 강하다. 대신 정정당당하고 정석적인거 말고 그림 잘그리는 사람을 커비처럼 삼켜서 비열하게 그림 잘 그리고 싶을 뿐.
또 나의 흥미를 끌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3D 모델링. 특히 스컬핑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조소. 게다가 요즘은 오픈 소스인 블렌더의 스컬핑이 아주 강력해져서 진입장벽도 전보다 낮아졌다고 들었다. ZBrush가 아직 업계 표준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락 읽고 있으면 어디까지나 취미 목적이란걸 금방 알게 됐을테니. 아무튼, 여기서 만든 모델링은 그럼 어디에 쓸 것인가?
6. 게임
전설적인 1인 개발 게임들
게임도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자연스럽게 게임을 만들고 싶단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어릴땐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을 만들어보기도 했었다. 역시 좋아하는게 있으면 하나 만들어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 특히 게임은 "좋아하는걸 만들어야지"란 생각이 폭주하는 분야인데, 그래서 무슨 게임을 만들지 이야기 하기 전에 배경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만화는 그럭저럭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원피스는 정말 좋아한다. 원피스는 지금 현존하는 지구상 최고의 만화고, 최다 판매량의 만화고, 인류가 보존해야할 작품이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과 더불어 일본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이며, 왜 만화 원피스가 대단한지 밤새도록 이야기 할 수 있고 ... 심지어 원피스에 대한 애정이 삐뚤어져서 오다 에이치로의 원작 만화만이 진정한 작품이며 원피스 TV 애니메이션, 원피스 IP 활용 게임들 등 대부분의 원피스 저작권사 공식 창작물들은 그를 어설프게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생각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좀 심한가.
지금까지 많은 게임을 해왔지만 가장 좋아하는 게임 장르는 격투 게임이다. 좋아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타고난 취향 같은게 있는 것인지, 어릴 때 문방구에 있는 오락기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게임이 《철권 태그 토너먼트》였다. 철권이 아니더라도 격투게임 장르가 붙은 게임이라면 일단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FGC의 일원이라 자부하려면 특정 한 게임만 차별해선 안되거든.
그래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은 바로 원피스 격투 게임. 말했듯이 가장 폭주하는 분야인 덕에, 순전히 "재밌는 거 더하기 재밌는 거 하면 엄청 재밌겠지?"란 생각으로 버킷 리스트에 담아둔 소재다. 물론 마냥 가능성 없는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래곤볼 파이터즈》가 얼마를 벌었더라. 다만, 혼자서 제대로 된 걸 만드려면 한 10년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7. 음반
이젠 심지어 코드 작성이 하나도 필요 없는 곳 까지 와버렸다. Chord는 작성해야 되긴 하는데 깔깔. 음악에 대한 욕구도 아주 오래전 부터 간직하고 있어 왔다. 노래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그렇고.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주인공 에블린이 자신이 액션영화 배우가 된 평행 우주를 체험한 것 처럼, 나도 다른 평행 우주에서 가수를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키보드를 충동 구매 하기도 했었고, 뜬금없이 노래 만들겠다고 설치고 다닌 적도 있었다. 주제만 던져 놓은게 많지만 내 메모장 어플에 있는 노래 스케치들도 수가 적진 않다. 어렸을 땐 넬 같은 밴드 노래를 아주 좋아했고, 수 년 전부턴 원슈타인을 광적으로 좋아하고 있다. 이들 같은 노래를 만들 수 있다면 너무 좋을텐데. 아직까진 충동에 기대는 수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신나게 이야기 하긴 했지만
이렇게 막연히 떠들고 있으면 문득 한 생각이 스친다. 결국 죽을 때 까지 이거 다 완성 못할 것 같은데. 심지어 본업까지 따로 가진 채로. 내가 너무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 중인건가. 사실 위 리스트 중 상당수는 이미 오래 전 부터 시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만드는걸 좋아하는 것 치곤 또 도전하는건 싫어하는 편인데,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상황 따지지 않고 일단 부딪혀서 어려움도 좀 겪은 다음에 그 자리까지 올라온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실, 내가 얼마나 진지한건지 잘 모르겠다. 신나서 말은 해놨는데, 끈기를 가지고 다 할 수 있을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모두가 장인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이 있듯이, 마음가짐을 다잡아야지. 이 글을 쓰면서 아직까진 내게 장인정신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기록하는 것도 만드는 것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지. 버킷 리스트는 아마 위에 적었던 것 중 몇 가지는 사라질 거고, 몇 가지는 또 새로 추가될 건데, 그 모든 흔적을 기록해둬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더 체감이 된다. 지난 글에서 만든 노션 페이지 처럼 버킷 리스트를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장인의 자세로 공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보자.
마지막으로, 사실 영화보는 것도 엄청 좋아하는데 영화 만들기는 도저히 엄두가 안나.. 그림도 엄두가 안나는 분야긴 한데 그래도 그림은 한 번 찔러보기에 진입장벽은 낮아서 거리낌이 없었나보다. 글이 길어졌네, 이런 글은 왠만하면 다들 안읽을텐데. 아무튼 글 끝.